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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서부보훈지청, 5월 현충시설 ‘신안군 암태도 소작쟁의 기념탑’
-현충시설과 함께하는 시간여행
 
조순익 기자
 

전남서부보훈지청(지청장 김종술)은 현충시설과 함께하는 시간여행 기획보도의 5월 대상시설로 전남 신안군 암태면 장단고길 10에 위치한 ‘암태도소작쟁의 기념탑’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전남서부보훈지청은 1분기에 이어 2분기(1920년대)의 현충시설 기획보도를 실시하고 있다.

암태도 농민소작쟁의는 일제의 가혹해진 소작료 수취가 발단이었다. 당시 암태도의 지주 문재철은 평균적인 소작료는 50% 정도를 훨씬 넘는 60~80%에 이르는 소작료를 요구했다. 

청년 서태석, 서창석 등은 1923년 말 암태소작인회를 조직하고 소작료를 조정하였다. 그러나 문재철은 이를 거절했다. 이에, 소작료 납부 거부와 함께 협상을 시도하던 중 경찰 고소와 고발, 구속 등으로 이어졌다. 

소작인회는 13명의 구속석방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기 시작하면서 쟁의가 확대되기 시작됐다. 섬주민 500여 명이 목포법원 마당에서 단식농성을 하자 이에 서울·평양 등 전국적으로 지원하는 강연회와 지원금을 모금했다.
한국인 변호사들은 무료로 변호를 자청하면서 파문이 계속 확산됐다. 이에, 마침내 일제는 더 이상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남도청과 무안군청 쪽도 문재철을 설득하여, 결국 타협안 6항(1항, 소작료 40%, 10%는 농업장려금 외 5항)이 마련됐다. 

이 중재로 인하여 쌍방간의 고소를 취하하면서 구속자들은 집행유예와 벌금형으로 풀려났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섬주민들의 강고한 단결력과 지속적인 투쟁으로 전국적 반향을 불러일으켜 다른 소작쟁의에 큰 힘을 불어넣어주었다는 의의를 갖는다. 

암태도 소작인 항쟁을 기리는 기념탑인 암태도 소작쟁의 기념탑 비석에는 소설 '암태도'를 쓴 송기숙 선생의 글이 새겨져 있다. 그날의 투쟁을 증거하는 글이다. 

1998년에 암태면사무소 옆 부지 4백여 평에 높이 7m, 폭 1.2m의 크기로 건립된 이 기념탑에는 소작인 항쟁사와 항쟁에 참여했던 농민 4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전남서부보훈지청 관계자는 “농민들의 작은 움직임들이 성공을 일군 암태도소작쟁의와 같은 사례를 통해 시민 한명 한명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중요성에 대하여 알게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조순익 편집위원 兼 기자(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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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21 [21:43]  최종편집: ⓒ 전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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