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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술의 변천사
축구 100배 즐기기 - 2편
 
손병하 기자
 
▲조기축구    

축구란 운동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당시의 축구는 정해진 인원이나 룰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저 하나의 공을 쫓고 쫓아 달리는 운동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무작정 전진해 정해놓은 지점까지 다다르면 이기는 무리 對 무리, 혹은 마을 對 마을의 운동으로 시작한 축구가 1800년대로 넘어 오면서 인원수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고, 1870년경 스코틀랜드에서 '패스'라는 개념의 도입으로 축구의 기본 룰이 정해지기 시작했다.

1972년 열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첫 국가대항간 경기에서(비공식)는 11명씩 선수의 제한을 두어 진행되었는데, 이 경기에서 개인의 드리블에 의한 경기와 상호간 패스에 의한 경기가 조화를 이루면 전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는 점을 발견, 이른바'조직력'에 의한 플레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1880년대 이르러서는 주위 선수에게만 하던 짧은 패스(short pass)에서 멀리 있는 선수에게 단번에 연결하는 롱패스(long pass)를 사용했고, 멀리서 날아오는 공을 안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헤딩, 가슴, 허벅지등으로 하는'트래핑'의 기본 기술들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해갔던 축구에서 한 개인의 능력 보다 더 중요했던 건 바로 11명으로 구성된 팀 전체의 전력을 어떻게 극대화하느냐는 것이었다. 

수비에서 바로 공격으로 연결 되었던 것이 18세기 축구라면 19세기로 넘어오면서 조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고, 비로소'허리'라는 미드필드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수비-중간-공격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틀을 만들어 나가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축구에서 전술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 2-3-5 포메이션

가장 처음 포메이션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2-3-5 시스템이었다. 
초창기 2명의 수비와 8명의 공격수를 사용 할 때에는 효과적이지 못한 공간의 사용으로 심한 체력 소모와 공격과 수비간의 심한 공백으로 팀의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8명이나 되는 공격수에서 3명을 떼어내어 공격과 수비 중간에 배치함으로써 체력 소모와 공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수 있었고, 패스에 의한 게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축구 전술에 있어서'아버지'격인 2-3-5 전술은 40년을 넘게 축구의 기본 전술로 자리 잡았었다.

▲ w - m 포메이션

가장 유명한 고전 포메이션 이기도한 w-m 시스템의 발견은 축구에서 오프사이드(off-side)라는'룰'의 변화에 따라 생겨난 것이었다.
1925년에 오프사이드 규정이 변경되자 각 팀들은 그 규정에 맞는 전술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으며 그 결과 2-3-5의 포메이션에서 중앙미드필드 자리에 있던 선수를 수비로 끌어내려 쓰리 백을 형성하고, 남게 되는 2명의 미드필더와 공격에 있던 5명중 2명을 사이드로 배치하여 실질적인 4명의 미드필더를 만들고 그 내려온 두 명이 공격과 수비에 가담케 하는 3-2-2-3 포메이션을 사용했던 것이었다. 
세 명의 풀백과 두 명의 하프백이 이루는 w, 두 명의 사이드백과 3명의 공격수가 이루는 m을 빗대어 w-m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전술은 1950년 우승한 우루과이와 1954년 월드컵에서 준우승했던 헝가리가 사용했던 전술로서 당시 최고의 인기 있는 전술 이였다.

▲ 4-2-4 포메이션

현재 수십 년을 세계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는 브라질은 향후 세계의 전술 흐름을 주도해 나갔으며 그 결과 월드컵 최다 우승국이란 명예와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w-m의 변형인 4-2-4 시스템을 도입해 우승을 차지했다.4-2-4는 w-m의 약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허리를 강화한 전법으로 수비와 공격에 포함되어 있던 4명중 각 2명씩은 항상 공격과 수비를 함께 수행하였는데, 그 결과 미드필더는 항상 6이라는 보이지 않는 숫자를 유지 할 수 있었고,공격과 수비에서도 항상 수적인 우위를 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체력적인 부담이 극심한 포메이션으로 곧 이를 보완한 다른 시스템으로 변화하게 된다.

▲ 4-3-3 포메이션

현대 축구에서 가장 공격적인 포메이션중 하나로 불리는 4-3-3 포메이션 역시 브라질에 의해 개발되었다. 
앞에서 말한 4-2-4의 체력적인 부담을 피하기 위해 공격수 하나를 미드필더로 내려 안정화를 꾀하였고,4명의 수비수중 한명은'리베로'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공격과 허리 수비 등 어떤 위치에서도 자유롭게 플레이를 펼치면서 팀 전력의 극대화를 시킬 수 있었다.
양쪽 사이드에 배치되었던 두 명의 측면 수비수가 활발한 공격가담으로 공격력에 힘을 불어 넣는 포메이션이기도 했다. 그 결과 브라질은 1962년 칠레 월드컵과 1970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제패하며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 카테나치오(빗장수비), 리베로, 토탈사커 포메이션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각 나라들은 자신들의 축구 스타일에 맞는 새로운 전술을 찾아 부심했다. 이탈리아는 두 번의 수비효과를 불러오는 '카테나치오(빗장수비)'를 개발 최고의 수비팀으로 거듭났는데,3명이나 4명의 수비수 뒤에 한명의 최종 수비수를 더 두어 상대 공격을 이중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기대했던 것이었다.

'리베로'시스템은 카테나치오에서 착안한 것으로 최종 수비수인 1명을 수비시에만 써 먹기에는 부족함을 느껴 미드필드와 공격지역을 두루 움직이며 활약 하게하는 지금의'리베로'를 두게 되었다.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우승한 서독의 베켄바우어가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 가담해서도 효과를 얻어냄에 따라 하나의 시스템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었다.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가 중심이 된'토탈사커'는 강한체력과 정신력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뛰며 그라운드를 장악하는'전원공격 전원수비'의 형태로서 어느 공간에서든 수적 우위를 점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전술 이였다.

▲ 3-5-2 포메이션

아르헨티나의'축구신동 '디에고 마라도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우수한 포메이션중 하나이다. 미드필더의 숫자를 5명으로 늘려 현대축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허리'의 중요성을 확인시킨 전술이다. 
중앙부터 타이트한 압박을 펼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전술로서'압박축구'의 시초이기도 하다. 이 전술은 향후 10여 년간 세계 축구 흐름을 주도했으며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우승국인 아르헨티나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우승국 서독이 바로 3-5-2 전술의 교과서였다.

▲ 4-4-2 포메이션

3-5-2가 흐름을 주도하던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fifa(국제축구연맹)는 계속 감소하는 골과 그에 따라 흥미를 잃어가는 관중을 되찾기 위해서 몇 가지 룰을 개정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골키퍼에게의 '백패스금지'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개정된 룰이 처음으로 사용 되었는데,당시 가장 빠르게 변화에 적응한 나라는 역시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백패스 금지로 인한 수비의 중요성이 다시 인식되자 수비수를 4명으로 늘리는 대신 양쪽 사이드에 있는 2명의 수비수를 윙백으로 활용해서 공격과 수비시에 우위를 점하게 하였다. 
이 4-4-2 포메이션으로 브라질은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프랑스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각각 우승컵을 거머쥐게 되었다.

현재 세계 축구의 주류는 아직 4-4-2 포메이션이다.
하지만 각 팀의 선수구성과 감독의 특색 그리고 위치별 활용도에 따라 4-5-1,4-2-3-1,1-4-4-1등의 변형된 포메이션을 계속 개발 중에 있다.

아직까지 현대 축구를 이끌고 있는 4-4-2.다음을 이어갈 포메이션을 생각해 보는 것도 즐거운 상상이 될 것이다.

 
기사입력: 2005/06/25 [01:27]  최종편집: 1970/01/01 [09:33] ⓒ 전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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